기억보다 선명한 기록

가족은 보호자가 아니다

soso_Lee 2020. 9. 19. 22:46

 회사에 제출하기 위한 기본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건강관리협회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집 근처에 있는 센터로 예약을 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상담원이 전화가 와서 건강검진 시간과 항목을 조정하다가 추가로 수면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함께 받고 싶다고 하니 보호자가 함께 오지 않으면 수면검사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제주도에 온 지 1년 5개월 차, 지금 나에게 보호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멍하니 침대에 한참을 앉아있다 문득, 항상 혼자서 비수면 내시경을 받고 오던 엄마 생각이 났다.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엄마는 항상 씩씩했다. 기동력 있게 운전도 잘하고 셈도 빨라서 우리 집안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CEO였다. 그러다 가끔 엄마가 좋아하는 프리지아를 사다 주면 아이처럼 기뻐했는데 그럴 땐 씩씩한 소녀 같다. 그만큼 씩씩함은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3년 전쯤 철학관을 가서 친구와 사주를 보다가 엄마의 사주를 본 적이 있다. 혼자 다 잘하는 사주여서 엄마보다 더 약한 형제들을 조부모님이 챙겼기 때문에 항상 애정에 대한 결핍과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했다. 특히 남편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데 남편은 기댈 수 없는 존재라서 항상 외롭다고 했다. 눈 앞에 엄마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엄마는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20살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일을 하며 돈을 벌어서 오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본인이 모은 돈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다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나서 평생을 고생하며 도자기 장사부터 과일장사, 포장마차에 고물상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철학관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다 맞다며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의 보호자는 누구였을까? 건강이 좋지 않아 종종 엄마는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다. 아니 실려간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찾아갔다. 처음 몇 번은 119 구급차를 불렀지만 그다음부터는 택시를 타고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항상 엄마와 같이 살고 함께 일했지만 그런 상황일 때마다 부재했다. 어린 나는 동행자일 뿐 도움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본인이 본인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쓰러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간신히 정신을 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콜택시를 부르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챙겨준 엄마의 가방을 메고 응급실 안에 따라 들어가서 안절부절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응급치료가 끝난  메고 있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수납창구로 가서 결제를 하고 나오면서 창백해진 엄마를 바라보면 너무 불쌍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엄마는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는 걸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 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되어있고 ‘보호자’는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가족과 보호자는 다르다. 가족이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보호자인 것이다. 보호자라 부를 수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지금의 내 상황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 건 왜였을까. 갑자기 펑펑 울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