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슈웅- 작은 핸디 청소기 안으로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간다. 청소기 안에 잔뜩 엉킨 머리카락과 먼지 따위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처 청소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머리카락을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고 카펫에 묻은 머리카락은 박스테이프를 한 바퀴 돌려 굴렁쇠를 굴리듯 둥그렇게 돌리면서 머리카락을 찍어냈다. 한바탕 청소를 끝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 바닥을 보니 수챗구멍에 끼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낸 후 휴지로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내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이제 정말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 무료한 휴일의 낮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책상에 앉아 책을 보다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려서 방 곳곳에 놓여 있는 머리 끈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고무 머리끈에 집혀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괜히 성질이 나서 머리카락을 요리조리 뜯어내도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다시 두리번대다가 침대에 굴러다니는 큰 곱창밴드로 머리를 묶었다. 머리를 묶고 나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미동 없이 놓인 머리카락에 진절머리가 나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꾸만 머리카락이 졸졸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처럼 나의 불안도 그렇게 나를 잠식시킨다. 전부 버리고 싶을수록 한 두 가닥만 봐도 진절머리가 나는 것처럼 한 가닥 피어나던 나의 불안도 주체할 수 없이 곳곳에서 자라난다.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은 나의 직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이 흩뿌려져 있다. 현저히 줄어든 월급 명세서를 받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가고 외국인들로 즐비하던 동네가 한산 해지는 걸 직접 보고 겪어 나간다. 그러다 코로나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뉴스가 들리기 시작한다. 서비스업에 속하는 나의 직장의 90%는 여성이다. 나를 비롯한 그들은 앞으로의 삶은 물론 현재의 삶도 알 수 없는 불안에 잠식당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음 차례는 내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 간다. 어둡고 밀폐된 곳에 갇힌 마음은 점점 더 지독한 형태가 되어간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진 탓에 켠 스탠드 불빛 사이로 내 발끝 아래 걸린 머리카락이 보인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머리카락을 치우듯 불안도 그렇게 치우다 보면 별거 아닌 일이 될 수 있을까 머리카락을 발로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