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이 진리인 듯한 착각. 그렇게 공고해진 잣대를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것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어긋난 파편을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인공 한센과 같은 교도소 방에 수감 중인 패트릭의 삶과 성직자이지만 인생의 말로에 노름꾼이 되어 교구의 운영 예산 전액을 빼돌린 한센 아버지의 삶, 포르노 영화관으로 유명세와 부를 얻은 한센 어머니의 삶, 렉셀시오르의 새로운 입주자 대표로 선출된 세즈윅의 삶 역시 그러한 부서진 조각처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이 말은 세상의 전장 한가운데서 패기 넘치는 주인공이 외치는 말이 아니다. 과오를 저지른 한센의 아버지가 마지막 설교에서 내뱉는 말이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삶이 기이한 소임을 맡기려고 나를 택했나 싶다. 내 주위에 있던 사람이 공교롭게도 생을 하직하는 순간 나를 만나 마지막 말을 남기는 일이 한 해동안 몇 번이나 있었으니 말이다.'242p
주인공 한센은 주변 인물들이 생과 이별하는 순간마다 존엄 있는 인간의 행위를 보여준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인부의 묘지에 꽃다발을 두고 온 일로 세즈윅에게 당신이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라는 굴욕스럽고 비참한 설교를 듣고 난 후에도 죽어가는 이를 보고 본인이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를 구하러 달려간다. 한센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법을 알고 반려견과 애틋함을 나눌 줄 알며 이웃에게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경쟁에 밀어 넣고 공생을 말하고, 나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짓밟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인간에 대한 환멸과 분노에 매몰되어갈 때 날카로운 조각에 베이지 않도록 마법의 주문처럼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고 되새김해 본다. 타인의 인생을 평가할 권리는 그 누구도 없다. 당신이 내 인생을 평가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낯선 지명과 인물 이름 때문에 조금 더디게 읽어 내려갔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대형 영화 포스터가 걸린 프랑스 르 스파르고 앞이었다가 어느 날은 캐나다 샛퍼드 마인스의 작은 감리교회 교단이었고 어느 날은 한센이 막무가내 패트릭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교도소 안이었다. 어둡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여행하듯 읽을 수 있게 글을 쓴다는 것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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