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1

 바둑은 복기가 중요하다. 대국을 복기하며 이미 놓아진 수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다양한 수를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바둑학원을 다녔다. 그때 300수가 넘는 대국 기보를 매주 외워서 시험을 봤는데 100수 이상 200수 이상 외우기 같은 레벨을 나누고 점수 카드를 받는 식의 학습법이었다. 나는 제일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승부욕에 기보를 통째로 외우곤 했다. 그렇게 공존보다는 경쟁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경쟁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회를 출전하는 순간 깨달았다. 중급반 이상이 되면서 매일 두세 번의 대국을 치렀던 학원생 중 한 명인 동생을 첫 대회에서 만났을 때, 나는 이겨야 하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엄마까지 대회에 같이 오셔서 생각이 더 복잡해져 버렸다. 그 날 2번째 토너먼트 경기에서 탈락한 나는 엄청난 패배감이 들었다. 대회 중 한 경기에서 진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는 매일 이기던 동생을 결국 이기지 못했다는 굴욕감과 그런 동생을 이기려고 마음먹었던 나에 대한 환멸, 사범님과 부모님의 기대의 부응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그들에게 포기당할 것 같은 두려움. 나는 나의 패배와 실패를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나를 혼란스럽고 힘들게 만들었다. 나도 정리하지 못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눌러 담으며 그냥 다르게 포장하기로 결심을 했다. 핑계 댈 수 있는 것들이 생기면 비겁하게 포기하는 법을 택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속아 넘어가도 나는 그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행복하지가 않았다. 도망치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이 결론을 토해내기까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바둑을 복기하듯 나의 삶을 복기하며 마음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감정의 상흔들에 정신 차리기가 힘들어졌다. 들추어진 나의 상처가 소독되는 중이어서 이토록 쓰라린 건지 그대로 곪아가는 중이라 후벼 파는 고통이 찾아오는 것인지 너무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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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 갔다. 진열된 책들을 보며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의 표절을 꿈꾸었다. 내 인생은 반지하에 갇혀  반틈 사이로도 햇빛이 보일락 말락 하는데  수많은 책에 담긴 사람들은 벌레도 올라가기 버거운, 습도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상 11층에 사는  같았다. 괜한 열등감이 차올라 처참한 기분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태연히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생을 골라 이리저리 들춰보았다. 20대에는 그런 책들을 보면 삶에 대한 열정과 야망이 꿈틀거렸다. 30대가 되니 그런 책들을 보면 세상이 얄궂게 느껴졌다.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만 구질구질해 보였다. 음성 없는 문자로 난도질당한 나는 아무런 책도 사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다움을 강요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 오히려 나는 나를 잃어간다. 자꾸만 나의 인생을 설명하고 정의 내리고 싶어 진다. 나라는 존재를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같은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선명하게 나를 알아가려고 할수록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세상의 거친 파도에 떠밀려 작은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이상한  희미해져 지워버리려 노력할수록 짙어지는 지난 기억 속의 나로 인해 때때로 울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이 시들어 버린  알았는데 최근에 감사함과 행복, 슬픔과 분노를 느낄 , 파릇파릇 새순 같은 감정이 살아났다. 어느덧 제주도에   1 , 삶이 막막해  죽고 싶던 나는 처음으로 살고 싶어 졌다. 

 

 예전에는 현실적이고 염세적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클래식을 들어도 단조 음악이 훨씬 더 끌렸고 대중가요도 가슴을 후벼 파는 선율과 가사를 더 좋아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주인공에게 진흙탕 같은 인생의 서사를 녹여낸 것들을 보며 감정 이입하곤 했다. 그렇게 일부러 나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죽고 싶었던 날들이 가득했었기에 거침없이 고통을 선택했다. 내가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관심 없던 동화 같은 기승전결의 해피엔딩이나 판타지를 다룬 영화나 소설을 본다. 꼭 행복을 꿈꾸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이제 숨 막히는 죽음을 갈구하지 않고 진부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해피엔딩으로 살고 싶어 졌다는 것을. 눈물이 났다. 살고 싶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Posted by soso_Lee :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1) 인간이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 2)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이다. 가치의 발현이란, 사전적 의미의 2)처럼 사물이나 인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에서 더 나아가 나와 나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 우리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가치란 실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 먼저 나의 가치를 나 스스로가 알아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발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나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태도를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존중하고 신뢰하게 된다. 만약 내가 뜻하지 않은 곤경에 빠졌을 때 나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없다면 심한 자기 검열과 자기 비하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나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갑작스러운 위기의 순간에 발휘할  있는 충분한 기지를 지녔어도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공포로 갑자기 심리적 불안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가치의 인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 것이 이루어졌을 때, 타인의 가치도 알아볼 수 있다.

 

 LOVE IS ACTION이라는 문장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사랑의 행위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공감과 지지, 격려와 응원이다. 이러한 감성적 행위는 나와 타인 간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중요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의 가치는 비슷한 욕구와 가치지향으로 만난 집단 안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집단이 공동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집단의 목표 달성으로 인한 성취감은 개인의 성취와는 다른 좀 더 커다란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개인의 뛰어난 가치와 능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모여 이룬 집단의 능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집단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대가 필요하다.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사회 속에서는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나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이의 가치 또한 인정하고 협력하는 순간 충족되는 부분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누군가를 신뢰하기란 매우 어렵다. 치열한 대한민국의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경쟁의식과 불신감으로 다른 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에 대한 가치 또한 매우 낮게 평가하며 의욕 없는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이 무기력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개인의 성장은 물론 경제적, 사회적 성장 또한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큰 포부를 가지고 커다란 계획을 짜는 것보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서로를 혐오하지 않는 함께 사는 세상의 첫걸음이 아닐까? 

Posted by soso_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