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감정이 뒤섞여 어지러운 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게 의미 없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열정이 샘솟아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홀가분하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해지고, 뭐라도 한 줌 쥐고 있는 걸 찾아서 기쁘다가도 고작 한 줌뿐인 것이 불행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세상에 나 홀로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 같다가도 돌아보면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겨져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순적 상황과 양가적 감정에 삶이란 뭘까 지독히도 고민하다 삶이란 별게 아니구나 대충 생각하며 넘긴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기에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있지만 가끔 현재에 뒤통수 맞는 경우가 있어서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점집이 호황이라고 한다. 얼마 전 만난 직장동료들도 너도나도 점집에 다녀온 후기를 들려줬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뻔한 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불안할 때 탄수화물을 먹는다. 매운 떡볶이를 먹고 평소에 거의 먹지 않는 단 케이크도 먹는다. 그래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으면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하고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어려운 책을 읽는다. 그래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실패한 나는 어제부터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고 있다. 연필로 줄을 치며 읽다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앞으로 몇 번을 가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심지어 화가 나서 씩씩대기를 반복하니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20대 초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왔던 나는 나의 감정을 현명하게 다루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 만약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면 내가 불안해서 화가 난 걸까, 서운해서 화가 난 걸까, 부러워서 화가 난 걸까, 나의 감정을 세분화시켜 바라보려 노력했고 내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 치열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살아보기도 하고 철저히 혼자인 채 생활하기도 했다. 나는 나에게 많은 실험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제주로 내려온 게 바로 작년의 일이다. 여전히 자유롭고 불안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창문 너머로 들리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인지 개구리 우는 소리인지 모를 것이 나를 괴롭히는 밤. 그것을 핑계로 괜히 나도 한 번 울어볼까 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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