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9.15 한 번 울어볼까 하다 말았다
  2. 2020.09.13 부탁하는 연습
  3. 2020.09.05 흩어진 조각의 기록 1

 여러 감정이 뒤섞여 어지러운 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게 의미 없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열정이 샘솟아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홀가분하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해지고, 뭐라도 한 줌 쥐고 있는 걸 찾아서 기쁘다가도 고작 한 줌뿐인 것이 불행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세상에 나 홀로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 같다가도 돌아보면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겨져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순적 상황과 양가적 감정에 삶이란 뭘까 지독히도 고민하다 삶이란 별게 아니구나 대충 생각하며 넘긴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기에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있지만 가끔 현재에 뒤통수 맞는 경우가 있어서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점집이 호황이라고 한다. 얼마 전 만난 직장동료들도 너도나도 점집에 다녀온 후기를 들려줬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뻔한 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불안할 때 탄수화물을 먹는다. 매운 떡볶이를 먹고 평소에 거의 먹지 않는 단 케이크도 먹는다. 그래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으면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하고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어려운 책을 읽는다. 그래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실패한 나는 어제부터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고 있다. 연필로 줄을 치며 읽다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앞으로 몇 번을 가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심지어 화가 나서 씩씩대기를 반복하니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20대 초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왔던 나는 나의 감정을 현명하게 다루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 만약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면 내가 불안해서 화가 난 걸까, 서운해서 화가 난 걸까, 부러워서 화가 난 걸까, 나의 감정을 세분화시켜 바라보려 노력했고 내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 치열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살아보기도 하고 철저히 혼자인 채 생활하기도 했다. 나는 나에게 많은 실험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제주로 내려온 게 바로 작년의 일이다. 여전히 자유롭고 불안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창문 너머로 들리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인지 개구리 우는 소리인지 모를 것이 나를 괴롭히는 밤. 그것을 핑계로 괜히 나도 한 번 울어볼까 하다 말았다.

Posted by soso_Lee :

 오늘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었던 중국어학원 선생님이자 제주에서 처음 친해진 친구인 언니를 만났다. 모국어는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더 잘 통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함께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면서 월급이 휴업수당으로 전환되면서 다니던 학원을 개인 재정상 다니기 어려워졌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20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학원을 그만두고도 언니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고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는 언제든 공부하다 어려우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본사에서는 더 높은 중국어 자격증을 요구했고 고용은 불안을 안은 채 스스로 마음을 잡고 독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나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한 그녀를 학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출제경향 자료까지 프린트해 온 언니는 수업하듯이 나에게 속성 강의를 해주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언니가 준비하는 대학원 논문 번역 때 언제든 도와주리라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활력을 얻는다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다른 이를 도와줄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반면에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유독 힘들어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누구나 쉽지 않겠지만 매우 부자연스럽다. 어느 심리학 관련 책을 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분석한 글을 보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고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의 나를 심하게 채찍질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자존심도 강한 편이어서 내가 부탁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행동이라 인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위로처럼 사람들이 건네는 “너는 정말 성공할 것 같아”, “너는 정말 좀 다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런 말들은 순간적인 위로와 자신감을 가지게 할 순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이었다. 그들이 던진 말에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평가하지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하며 자기 비하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성과를 거두어 나를 칭찬하면 기쁘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섰다. 

 

 슬프게도 나는 늘 잘될 것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부탁하는 연습을 한다. 그런 나의 부탁을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주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것을 보고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오늘도 논문 준비와 학원 수업 준비로도 바쁜 언니가 나를 위해 함께 공부하러 나와주었을 때, 억지로 공부하느라 축 처졌던 마음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세상에 치여 유행처럼 도는 인생은 마이웨이라는 말을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더 와 닿게 깨달은 건 함께하면 혼자 걷지 못했던 몇 걸음을 더 걸어간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힘은 크다. 매일 상상으로만 글을 쓰던 내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벌써 14일째 글을 쓰고 있고 혼자 유튜브 보며 요가를 하다 다섯까지도 버티기 힘든 동작이 요가원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좀 더 깊은 동작을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없다. 때로 혼자 걷고, 때로 함께 걸으며 그저 그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Posted by soso_Lee :

 

 

1.

 

 나는 체력이 약하다. 위장도 약하고 더위에도 약하고 추위에도 약하다. 힘이 들면 데굴데굴 구르는 급성 위염이 오고 살갗이 베인 듯 아픈 대상포진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스럽게 또 걷고 떠나고 일하고 도전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얕은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그러다가 절박하게 숨을 쉬어보고 싶어 졌다. 이제 숨을 쉬며 살고 싶어 졌다.

 

 

 

2.

 

 

 “ 나은 씨, 혹시 나태해져 본 적 있어요? “

 

상담사 선생님에게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질문을 받았다. 듣자마자 질문의 생소함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 나태했었던 기억들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괜히 안절부절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분을 그저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 없는 것 같아요

 

그럼 나은 씨가 나태하다고 느끼는 모습은 뭐예요?"

 

.. 어렵네요 그냥 저는 누워서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하면서 늘어져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 싫어요. 그런 모습을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쉼 없이 움직이고 공부하고 배웠어요 끊임없이. 그러네, 그랬네요 제가.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의 말을 내뱉으면서 하나씩 깨달아졌다. 나를 몇 주간 쭉 지켜보던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나은 씨, 누구나 그래요. 가끔 혹은 자주 누워서 늘어져라 TV도 보고 휴대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그래도 돼요

 

.. 그래도 돼요?"

 

 그렇구나, 그렇게 해도 됐구나. 정말 몰랐다.

 

 

3.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행복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그 순간부터 행복이 나에게서 전부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행복이 도망 간 그 자리에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채워져 전보다 더 불행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콘크리트로 빈틈없이 틀어막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다.  

 

 

 

4.

 

 이성을 잃고 흐트러지는 게 싫어 술을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꽤나 마시는 편이지만 취하면 나의 아주 약한 부분이 건드려져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내 모습이 싫다.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면 괜히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 밤이 더 캄캄해 보이고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난다. 네 날 사랑하지 않아 서럽고 정지 버튼 없는 세월에 힘없이 늙어버린 엄마 아빠의 모습에 서글퍼진다. 나는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보내고 싶지 않은데 평생 느끼고 싶지 않은데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말아 줘. 먼저 가지 말아 줘. 살아만 있어줘. 나를 사랑해줘. 아이 같은 외침이 나를 뒤흔든다. 술은 몸에도 해롭지만 마음에도 해롭다.

 

 

 

5.

 

 5일간의 긴 휴무 중 3일은 빨래를 했다. 이틀은 이불 빨래를 하고 하루는 수건 같은 것을 세탁기에 돌렸다. 오늘 낮에 바짝 마른 수건을 털털 털면서 빨래를 개는데 문득 빨래에서 친할머니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냄새라기 보단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신 빨래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 생각이 나면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나 골몰히 생각하다 아빠가 떠올랐다.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는 바람에 아빠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이렇게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삶은 짧고 나는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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