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1

 여러 감정이 뒤섞여 어지러운 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게 의미 없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열정이 샘솟아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홀가분하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해지고, 뭐라도 한 줌 쥐고 있는 걸 찾아서 기쁘다가도 고작 한 줌뿐인 것이 불행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세상에 나 홀로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 같다가도 돌아보면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겨져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순적 상황과 양가적 감정에 삶이란 뭘까 지독히도 고민하다 삶이란 별게 아니구나 대충 생각하며 넘긴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기에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있지만 가끔 현재에 뒤통수 맞는 경우가 있어서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점집이 호황이라고 한다. 얼마 전 만난 직장동료들도 너도나도 점집에 다녀온 후기를 들려줬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뻔한 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불안할 때 탄수화물을 먹는다. 매운 떡볶이를 먹고 평소에 거의 먹지 않는 단 케이크도 먹는다. 그래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으면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하고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어려운 책을 읽는다. 그래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실패한 나는 어제부터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고 있다. 연필로 줄을 치며 읽다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앞으로 몇 번을 가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심지어 화가 나서 씩씩대기를 반복하니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20대 초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왔던 나는 나의 감정을 현명하게 다루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 만약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면 내가 불안해서 화가 난 걸까, 서운해서 화가 난 걸까, 부러워서 화가 난 걸까, 나의 감정을 세분화시켜 바라보려 노력했고 내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 치열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살아보기도 하고 철저히 혼자인 채 생활하기도 했다. 나는 나에게 많은 실험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제주로 내려온 게 바로 작년의 일이다. 여전히 자유롭고 불안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창문 너머로 들리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인지 개구리 우는 소리인지 모를 것이 나를 괴롭히는 밤. 그것을 핑계로 괜히 나도 한 번 울어볼까 하다 말았다.

Posted by soso_Lee :

 오늘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었던 중국어학원 선생님이자 제주에서 처음 친해진 친구인 언니를 만났다. 모국어는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더 잘 통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함께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면서 월급이 휴업수당으로 전환되면서 다니던 학원을 개인 재정상 다니기 어려워졌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20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학원을 그만두고도 언니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고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는 언제든 공부하다 어려우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본사에서는 더 높은 중국어 자격증을 요구했고 고용은 불안을 안은 채 스스로 마음을 잡고 독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나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한 그녀를 학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출제경향 자료까지 프린트해 온 언니는 수업하듯이 나에게 속성 강의를 해주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언니가 준비하는 대학원 논문 번역 때 언제든 도와주리라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활력을 얻는다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다른 이를 도와줄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반면에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유독 힘들어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누구나 쉽지 않겠지만 매우 부자연스럽다. 어느 심리학 관련 책을 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분석한 글을 보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고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의 나를 심하게 채찍질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자존심도 강한 편이어서 내가 부탁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행동이라 인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위로처럼 사람들이 건네는 “너는 정말 성공할 것 같아”, “너는 정말 좀 다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런 말들은 순간적인 위로와 자신감을 가지게 할 순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이었다. 그들이 던진 말에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평가하지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하며 자기 비하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성과를 거두어 나를 칭찬하면 기쁘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섰다. 

 

 슬프게도 나는 늘 잘될 것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부탁하는 연습을 한다. 그런 나의 부탁을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주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것을 보고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오늘도 논문 준비와 학원 수업 준비로도 바쁜 언니가 나를 위해 함께 공부하러 나와주었을 때, 억지로 공부하느라 축 처졌던 마음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세상에 치여 유행처럼 도는 인생은 마이웨이라는 말을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더 와 닿게 깨달은 건 함께하면 혼자 걷지 못했던 몇 걸음을 더 걸어간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힘은 크다. 매일 상상으로만 글을 쓰던 내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벌써 14일째 글을 쓰고 있고 혼자 유튜브 보며 요가를 하다 다섯까지도 버티기 힘든 동작이 요가원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좀 더 깊은 동작을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없다. 때로 혼자 걷고, 때로 함께 걸으며 그저 그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Posted by soso_Lee :

 

 서점에 갔다. 진열된 책들을 보며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의 표절을 꿈꾸었다. 내 인생은 반지하에 갇혀  반틈 사이로도 햇빛이 보일락 말락 하는데  수많은 책에 담긴 사람들은 벌레도 올라가기 버거운, 습도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상 11층에 사는  같았다. 괜한 열등감이 차올라 처참한 기분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태연히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생을 골라 이리저리 들춰보았다. 20대에는 그런 책들을 보면 삶에 대한 열정과 야망이 꿈틀거렸다. 30대가 되니 그런 책들을 보면 세상이 얄궂게 느껴졌다.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만 구질구질해 보였다. 음성 없는 문자로 난도질당한 나는 아무런 책도 사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다움을 강요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 오히려 나는 나를 잃어간다. 자꾸만 나의 인생을 설명하고 정의 내리고 싶어 진다. 나라는 존재를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같은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선명하게 나를 알아가려고 할수록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세상의 거친 파도에 떠밀려 작은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이상한  희미해져 지워버리려 노력할수록 짙어지는 지난 기억 속의 나로 인해 때때로 울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이 시들어 버린  알았는데 최근에 감사함과 행복, 슬픔과 분노를 느낄 , 파릇파릇 새순 같은 감정이 살아났다. 어느덧 제주도에   1 , 삶이 막막해  죽고 싶던 나는 처음으로 살고 싶어 졌다. 

 

 예전에는 현실적이고 염세적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클래식을 들어도 단조 음악이 훨씬 더 끌렸고 대중가요도 가슴을 후벼 파는 선율과 가사를 더 좋아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주인공에게 진흙탕 같은 인생의 서사를 녹여낸 것들을 보며 감정 이입하곤 했다. 그렇게 일부러 나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죽고 싶었던 날들이 가득했었기에 거침없이 고통을 선택했다. 내가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관심 없던 동화 같은 기승전결의 해피엔딩이나 판타지를 다룬 영화나 소설을 본다. 꼭 행복을 꿈꾸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이제 숨 막히는 죽음을 갈구하지 않고 진부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해피엔딩으로 살고 싶어 졌다는 것을. 눈물이 났다. 살고 싶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Posted by soso_Lee :

 

 나의 삶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듯 타인의 삶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다른 이를 무시하고 세상의 주인공인양 굴기 시작하는 순간.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이 원리를 삶의 곳곳에서 순간순간 침범당한다.  

 

 

 

“너는 생각보다 착하지 않구나” 

 

나를 향한 힐난..

 

 맹세코 나는 그들에게 누누이 말했다. 그들이 “너는 정말 착한 것 같아!”라고 할 때마다 거듭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착하지 않다고. 그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평가하더니 또 마음대로 혼자 기분이 상해서 상처 받으라는 투로 흘기며 나에게 말한다. “너는 생각보다 착하지 않구나." 그들은 대부분 나를 아래로 두고 나를 휘두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원한 건 착하고 선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복종하고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관계에서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숨기고 있던 본색을 천천히 드러내며 나를 조종하려 들지만 뜻대로 내 위에 군림하지 못할 때 점점 공격적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건드는 부분은 시대를 역행하는 치졸하고 유치한 것들인데, 가령 민주주의와 동등함을 내세우며 유지하던 관계에서 갑자기 본인들의 나이와 학벌을 내세우며 나를 가르치려 들거나 요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해대거나 삼삼오오 패거리를 만들어 나를 소외시키는 것들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학교 안에 갇혀 친구들 간의 관계가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던 학생 신분이 아니기에 그들의 그러한 공격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주인공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진적 마인드를 가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나를 보며 더 화가 나서 나의 험담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의 불편함을 모면하고자 피해의식과 열등감, 또 이상한 권위주의로 버무려져 있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피로하다.

 

 살다 보면 세상이 손에 잡히는 지구본처럼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수록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지구본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다. 지구 안에 현존하는 인구는 더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나를 힐난하는 그들의 존재는 먼지 같은 사람들이다. 오늘도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내 인생에서 그들을 털어내며 묵묵히 나의 길을 간다. 

Posted by soso_Lee :

 

 

1.

 

 나는 체력이 약하다. 위장도 약하고 더위에도 약하고 추위에도 약하다. 힘이 들면 데굴데굴 구르는 급성 위염이 오고 살갗이 베인 듯 아픈 대상포진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스럽게 또 걷고 떠나고 일하고 도전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얕은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그러다가 절박하게 숨을 쉬어보고 싶어 졌다. 이제 숨을 쉬며 살고 싶어 졌다.

 

 

 

2.

 

 

 “ 나은 씨, 혹시 나태해져 본 적 있어요? “

 

상담사 선생님에게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질문을 받았다. 듣자마자 질문의 생소함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 나태했었던 기억들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괜히 안절부절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분을 그저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 없는 것 같아요

 

그럼 나은 씨가 나태하다고 느끼는 모습은 뭐예요?"

 

.. 어렵네요 그냥 저는 누워서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하면서 늘어져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 싫어요. 그런 모습을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쉼 없이 움직이고 공부하고 배웠어요 끊임없이. 그러네, 그랬네요 제가.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의 말을 내뱉으면서 하나씩 깨달아졌다. 나를 몇 주간 쭉 지켜보던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나은 씨, 누구나 그래요. 가끔 혹은 자주 누워서 늘어져라 TV도 보고 휴대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그래도 돼요

 

.. 그래도 돼요?"

 

 그렇구나, 그렇게 해도 됐구나. 정말 몰랐다.

 

 

3.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행복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그 순간부터 행복이 나에게서 전부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행복이 도망 간 그 자리에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채워져 전보다 더 불행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콘크리트로 빈틈없이 틀어막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다.  

 

 

 

4.

 

 이성을 잃고 흐트러지는 게 싫어 술을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꽤나 마시는 편이지만 취하면 나의 아주 약한 부분이 건드려져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내 모습이 싫다.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면 괜히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 밤이 더 캄캄해 보이고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난다. 네 날 사랑하지 않아 서럽고 정지 버튼 없는 세월에 힘없이 늙어버린 엄마 아빠의 모습에 서글퍼진다. 나는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보내고 싶지 않은데 평생 느끼고 싶지 않은데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말아 줘. 먼저 가지 말아 줘. 살아만 있어줘. 나를 사랑해줘. 아이 같은 외침이 나를 뒤흔든다. 술은 몸에도 해롭지만 마음에도 해롭다.

 

 

 

5.

 

 5일간의 긴 휴무 중 3일은 빨래를 했다. 이틀은 이불 빨래를 하고 하루는 수건 같은 것을 세탁기에 돌렸다. 오늘 낮에 바짝 마른 수건을 털털 털면서 빨래를 개는데 문득 빨래에서 친할머니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냄새라기 보단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신 빨래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 생각이 나면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나 골몰히 생각하다 아빠가 떠올랐다.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는 바람에 아빠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이렇게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삶은 짧고 나는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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