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된 것은 환경문제와 경제문제였다. 특히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현재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것에 기대어 망쳐져 가던 것들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1년에 한 번 해외로 휴가를 가야 하고, 코로나 19로 해외를 가지 못하게 되니 제주도라도 가야 하고 지방이라도 가야 하는 그 일상은 언제부터 정해진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을까? 코로나 19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두렵지만 해야만 하는 일상은 무엇인가? 위험을 경고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가고 클럽을 가고 목욕탕을 가고 제주도로 떠나고 강원도로 떠나고 전라도로 떠나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나는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 6개월이 되었다. 제주도에 내려오고 1년이 좀 안되었을 때부터 코로나 19의 공포가 찾아왔는데 특히 근무하는 곳이 중국인 여행객들과 바로 마주하는 곳이어서 더 두려웠다. 2월 즈음 본사에서 마스크 지원을 시작했고 손소독제와 청소용 알코올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생생히 기억난다. 우한발 코로나 19 초반에는 제주도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어서 우리는 전염병의 최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철저히 방역했고 한 명도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제주도내에서도 우리 근무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난 후 전세가 역전되어 제주도는 청정지역이라면 국내 관광객들이 넘쳐나게 된 현상이었다. 청정지역이라는 의미 속에 제주도민들이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를 활보하고 다닐 때의 두려움은 포함되지 않았다. 제주도의 대부분의 확진자는 여행객이거나 육지에 다녀온 제주도민이었다. 그들의 동선 또한 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관광지와 사람 많은 곳을 방문한 흔적이었다. 여행을 하고 맛있는 걸 먹는 삶이 인간다운 삶일까? 우리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며 살고 있는 걸까. 다른 이들의 두려움은 뒤로한 채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해 여행하는 삶이 진정 인간다운 삶일까? 안다. 경제활동이 멈추면 안 되기에 최대한 조심하여 지역경제를 위해 소비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나만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지는 않았나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가끔 SNS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2.5단계까지 간 상황에서도 여행을 가고 캠핑을 하고 마스크를 벗은 채 글을 올린다. 그니까 우리가 돌아가고자 하는 일상은 제대로 된 일상이 맞을까? 

 가을호 '특집' 부분을 읽으며 코로나 19를 겪으며 느꼈던 감정이 섬세하게 구분되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의 끝은 어디일까. 동시에 인간다움을 영위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는 회사에 9시간 이상 묶여있을 필요 없이 조금 더 자유롭고 더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소비적인 활동이 아닌 생산적인 활동 또한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조금 경제적으로 그 전보다 덜 번다해도 삶의 만족감은 높아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한 노동력에 대한 인식개선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성비를 따지며 더 값싼 제품을 사듯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은연중에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대체품으로 교체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도 나이가 들면, 성별이 여자이면, 학벌이 좋지 않으면,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밀려나는 것이 당연한 듯 아닌 척하는 사회였다.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 

 올해 유독 우리나라는 유래 없는 긴장마를 겪었다. 세계 곳곳에서는 관광객들이 현저히 줄어들자 자연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생물들이 다시 나타나고 식물들이 자라났다. 인간들은 대체 어떤 일상을 살고 있던 걸까? 인간들이 코로나 19라는 것을 맞닥드리며 꿈꾸는 과거의 일상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돌아가야 할 일상이 맞을지에 대한 우리 스스로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soso_Lee :

 슈웅- 작은 핸디 청소기 안으로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간다.  청소기 안에 잔뜩 엉킨  머리카락과 먼지 따위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처 청소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머리카락을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고 카펫에 묻은 머리카락은 박스테이프를 한 바퀴 돌려 굴렁쇠를 굴리듯 둥그렇게 돌리면서 머리카락을 찍어냈다. 한바탕 청소를 끝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 바닥을 보니 수챗구멍에 끼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낸 후 휴지로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내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이제 정말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 무료한 휴일의 낮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책상에 앉아 책을 보다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려서 방 곳곳에 놓여 있는 머리 끈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고무 머리끈에 집혀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괜히 성질이 나서  머리카락을 요리조리 뜯어내도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다시 두리번대다가 침대에 굴러다니는 큰 곱창밴드로 머리를 묶었다. 머리를 묶고 나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미동 없이 놓인 머리카락에 진절머리가 나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꾸만 머리카락이 졸졸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처럼 나의 불안도 그렇게 나를 잠식시킨다. 전부 버리고 싶을수록 한 두 가닥만 봐도 진절머리가 나는 것처럼 한 가닥 피어나던 나의 불안도 주체할 수 없이 곳곳에서 자라난다.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은 나의 직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이 흩뿌려져 있다. 현저히 줄어든 월급 명세서를 받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가고 외국인들로 즐비하던 동네가 한산 해지는 걸 직접 보고 겪어 나간다. 그러다 코로나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뉴스가 들리기 시작한다. 서비스업에 속하는 나의 직장의 90%는 여성이다. 나를 비롯한 그들은 앞으로의 삶은 물론 현재의 삶도 알 수 없는 불안에 잠식당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음 차례는 내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 간다. 어둡고 밀폐된 곳에 갇힌 마음은 점점 더 지독한 형태가 되어간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진 탓에 켠 스탠드 불빛 사이로 내 발끝 아래 걸린 머리카락이 보인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머리카락을 치우듯 불안도 그렇게 치우다 보면 별거 아닌 일이 될 수 있을까 머리카락을 발로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Posted by soso_Lee :

 과거의 기억이 먼지처럼 소멸됐다.헛웃음이 났다. 절벽 끝에 선 절박함으로 떠났을 때와 그때를 생각하는 지금의 감정이 꽤나 다르게 변한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고통도 미화시켜 현재의 감정에 알맞게 기억을 재정립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나의 과거가 현재의 고통에 잠식되는 걸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괜히 씁쓸해졌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선택은 버겁기만 하다. 어차피 소멸될 기억이라면 파도에 실려 저 멀리 바다로 가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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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so_Lee :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기에 수많은 얽힘 속에 조금의 운이 필요할 때가 있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운에 기대어 사는 것은 남에게 나의 감정과 인생을 떠맡기는 바보 같은 짓이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 차곡차곡의 힘이다. 스치듯 우연처럼 운명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차곡차곡 쌓아 온 무언가로 그 기회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요즘에는 부정적으로 다루어지곤 한다. 내가 성과를 내어 무언가를 이루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면서 소확행과 욜로 같은 것이 유행했고 건물주의 자식이 되고 싶다거나 태생을 자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별주의였던 학벌주의를 넘어선 물질 만능 주의가 팽배해졌다. 그에 따른 지나친 에고의 확장으로 인한 수입을 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수입과 직결되는 인기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과한 미디어 노출에 스스럼이 없어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SNS에 광고 게시물을 올리고 많은 돈을 받는 것을 보면 연예인들의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생겨난다. 갈수록 노동의 가치가 절하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에 대한 서글픔 따위이다. 현 세태와는 반대로 인간의 행복은 소비를 통한 일시적이고 채워지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노동과 여가의 적절한 배분으로 얻는 성취감으로 더 오래간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명확히 알아간다. 과거의 나도 언론과 미디어에서 어느 정도 조장된 분위기에 휩쓸려 불필요한 소비를 하곤 했지만 그 순간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건조한 잔모래처럼 그냥 툭치면 흩날리듯 날아가버리는 것들이었다. 차곡차곡, 하루하루 글을 쓰며 100일을 채워가는 글쓰기를 하고, 차곡차곡, 안 되는 동작들도 꾸준히 호흡하며 요가를 하고, 차곡차곡 적은 돈이지만 저축을 해본다. 오늘 하루 조금씩, 하나씩 채워나가는 이 모든 차곡차곡들이 모여 언젠가 스치듯 내게 올 기회를 그저 운처럼 끌어당겨줄 것이다. 그러니 욕심부리지 말고 착실히 오늘을 살아가자. 차곡차곡.  

Posted by soso_Lee :

오늘 악몽을 꿨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이었는데 낯익은 포터 차가 갑자기 후진을 하며 인도로 넘어가서 어딘가에 큰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큰아빠 댁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가겠다고 변덕을 부리며 전화한 나를 데리러 오던 부모님이 피해자인 것 같았다. 나는 꿈속에서 통화 중이던 엄마에게 수화기 너머로 울며 소리쳤다. 저게 엄마냐고! 저 차가 엄마 아빠냐고!! 진정되지 않는 절망의 장면에서 이어진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잠에서 깼다. 어둑한 이른 새벽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대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저 꿈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하기가 망설여져서 [부모님의 교통사고를 목격하는 꿈]을 검색창에 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도저히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최대한 별일 없어 보이려고 귀여운 이모티콘을 두 개 보냈더니 엄마가 그새 확인을 하고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며 장난스레 묻는 엄마의 말에 “꿈을 꿨는데.. 꿈이 너무 안 좋아서..”라고 말하자 엄마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체 어떤 꿈을 꾸었길래 그러냐며 물었다.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뚝뚝 눈물만 흘렸다.

 그런 날, ‘이름 없는 마음’을 읽었다. 마지막 문단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이 저려왔다.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 떠오른 생각들은 전부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감내해 준 일들이었다. 가난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결국 스무 살이 넘자 나에게 까지 대출을 받아달라 요구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회 초년생 시절 그것들을 해주면서 나는 이 것이 해결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보기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나를 괴롭히던 지독한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 ‘지겨워’와 ‘미안해’를 오갔을 마음. 그런 마음을 읽으며 자꾸만 부모님 생각이 났다. 가끔 행복하면 죄책감이 드는 건 부모님에 대한 나의 묵은 감정이다. 나는 우산 없어도 되니까 다시는 기다리지 말라고, 나 안 챙겨도 되니까, 너나 잘하라고, 이 문장을 읽어며 나도 모르게 못되게 내뱉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내심 나는 내가 걱정 안 해도 되는 부모님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힘들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보며 꼭 성공하고 싶었지만 커보니 사회적 성공이라는 것보다 그저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에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들이 짐처럼 느껴졌다. 너무 버거워서 주저앉고 싶었고,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이 마음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걸까. 엄마도 나와 같은 걸 느끼고 있진 않을까 그 이름 없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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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두고 도망치듯 달아나 왜 우는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날 가두어 타인으로부터 단절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늘 수포로 돌아간다. 도망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인연을 맺는다. 나는 늘 도망가고 싶다고,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 쳤지만 늘 함께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참 신기한 건 나한테 너는 왜 마음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냐, 정신 차리고 살아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쉽게 나를 비난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는 누군가의 소리가 아니라 나의 마음의 소리일 뿐이었다. 굳이 불행을 선택하며 가는 나를 붙잡아 세워 간신히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잘하고 있어. 괜찮아. 

Posted by soso_Lee :

 집을 알아보러 나갈 준비를 하며 잠시 티브이를 틀었는데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독립 영화 중에서도 정말 잘 만든 좋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줄거리를 보고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안 좋을까 봐 보지 않고 피해왔었다. 내가 틀었을 때는 이미 한창 갈등이 고조되며 영화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선이와 지아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하는 행동과 말들을 보고 들으며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슬펐다. 영화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서 끝까지 보지 못할 것 같아 옷을 갈아입는 데 문득,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편의를 봐주는 것, 배려라는 단어로 곱게 포장된 나의 모습이 어쩌면 혼자여서 외롭고 힘들었던 그 시선과 근거 없는 이야기들로 생겨버린 마음의 생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며 자주 이사를 다녀서 덩달아 나도 전학을 자주 가게 되었다. 나는 전학을 가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친구들과 가까워질 만하면 이사를 가고 헤어지고 또 어색하게 이미 친해진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사한 곳에서는 정착하게 되었는데 전학 온 지 3년 정도 지나 학교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일이 터졌다. 내가 미술시간에 우리 반에서 부동의 인기를 누리던 친구의 가방에 먹물을 쏟았고 나는 그 친구를 포함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쓰던 우정장에서 다음 날부터 제외되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꿋꿋이 학교를 나가야만 했다.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기 싫었고 이런 나의 움츠러든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나에게 던져지던 그 시선, 그 말투. 그 사이에서 울지 않고 참으면서도 잔뜩 주눅 들었다. 기대보다 체념을 더 많이 배운 그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여 많이 힘들었는지 학교 가기 전 아침에 부모님과 할머니와 함께 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으며 먹는 둥 마는 둥 학교에 가기 싫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빠가 장난처럼 너 왜 맨날 학교 가기 싫다고 그러냐며 학교에서 애들이 괴롭히냐고 툭 던진 그 말에 밥을 먹다 말고 펑펑 울었다. 혼자 꾹꾹 누르고 참는데 한계가 왔다는 듯이,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펑펑, 엉엉 울었다. 당황한 부모님이 학교에 연락을 했고 그 날 이후로 그 친구들은 나에게 사과를 했다. 주동자였던 친구는 선생님한테 까지 알려지자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고 중학교까지 같이 올라간 후로는 고등학교 때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12살, 그 반년 동안 당했던 그때의 기억은 나를 잠식시켰고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도 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지려 애썼고 마음을 주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다 그 친구들이 정말 알 수 없는 이유로 또다시 나를 떠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습관들 여전히 나에게 남아 쉴 새 없이 마음을 열고 닫으며 나를 참 힘들게 한다. 여전히 다친 마음을 안아 들고 아이처럼 펑펑 울고 나면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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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과 가을, 제주도에서 같은 계절을 두 번째로 맞이했다. 제주도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며 이제야 제주도만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에 내려와 지난 1 5개월동안은 새로운 환경과 직장에 적응하고 부딪히느라 제주도에 산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못 느꼈다. 부모님과 관계와 수많은 인간관계에 지쳐 그저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소. 숨어있을 장소 정도로만 여기며 지내왔다. 많은 고민 끝에 오늘 전셋집을 알아보러 서귀포로 가는 버스 밖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반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두고 세상 모든 짐을 다 진 듯 끙끙거리며 살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나에게 육지로 돌아가지 말라고 제주도가 붙잡는다면 친한 동생에게 농담을 쳤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붙잡는 건 너인지 결국 내 마음인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조차 내가 빠른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고 일을 할 때도 빨리빨리 습득해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는 것에 집중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 관계와 일에 있어서 매번 만족하지 못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1년 반이 지나서야 내가 지내는 곳에 애정이 생겼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깊이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제주도에 있어서 라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러니 조금 더 기분좋게 살아갔으면 해.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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