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2005.10.13 개봉)
사랑이란 말로 용서할 수 있는 행동은 어디까지일까. 늦가을부터 겨울의 계절 안에서 시카고의 매력이 느껴지는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 영화인 줄 알고 시작한 영화였는데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에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했다. 뭔가 화면이 뚝뚝 끊기는 듯 빠르게 지나갔던 지난 장면들이 중후반에 주인공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의 이동으로 재조립되면서 나타나는 반전 덕분에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주인공 매튜는 우연히 마주친 리사를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미행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매튜의 행동은 스토킹이나 다름없었고 그것을 운명과 사랑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다. 어쨌든 둘은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어느 날 매튜의 프러포즈를 받은 후 다음날 답변을 주겠다고 한 채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리사 때문에 매튜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매튜는 약혼자의 오빠의 회사에서 일하며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출장을 가기 전 매튜는 미팅 장소인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리사인 듯한 여자를 발견하고 중국으로 떠나는 척 공항에서 약혼자와 인사를 나누고 리사를 찾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을 두고 운명의 사랑이라며 포장하며 시종일관 약혼자를 건조하게 대하는 매튜의 행동 또한 불편한 장면 중 하나였다. 심지어 매튜는 리사인척 접근한 리사의 친구 알렉스에게도 너무나 쉽게 넘어간다. 백번 양보해서 진짜 리사를 찾기 전이었고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약혼자가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하나의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된 것이 점점 커져 리사와 매튜 그리고 매튜의 친구인 루크까지 속인 알렉스의 행동도 잘못되었지만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다시 만날 때 애틋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눈물 나도록 감동적이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매튜의 애매모호하고 이중적인 행동들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 말로 용서할 수 있는 행동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먼저 당신보다 누군가를 먼저 사랑했다고 해서 그가 날 사랑할 의무는 없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해서 그를 스토킹 할 권리도 없다. 자신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착각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범죄와 가까워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다 보면 결국 이기적인 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럴 때 일수록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소유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드러내는 호감과 애정의 눈빛과 표현이 징그럽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소유와 탐욕으로 가득 찬 그들은 거리를 두는 나에게 되려 불쾌감을 표출하곤 한다. WANT와 LOVE는 다르다. 알렉스가 한 것도 WANT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장면이나 음악 같은 전체적인 무드는 좋았지만 끝에 씁쓸한 감정 말고 남은 게 없었다.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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