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가을호 ‘시’]
*시: 명사 문학.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시를 읽는다는 건 시인의 인생과 감흥과 사상을 언어로 느끼는 것이다. 가끔 한 장도 다 채워지지 않은 짧은 시를 읽으면서도 나의 인생을 감시당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음악이 없어도 언어의 운율에 실려 단조로 그려진 시를 좋아한다. 짙은 감정이 넘실대는 시를 읽으면 하루종일 마음속이 요란스럽게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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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달방에 세 든 나는 창문 너머 캄캄한 바다만 바라볼 뿐
저 건너편 뿌연 등댓불이 건네는 위로의 꽃 한 송이도 차마 받지 못하고
그저 꽃 같은 불빛 끌어안고 밤새 뒤척이다
입안 가득 머금은 침묵의 말들 모래톱에 뱉어 놓았다
더는 눈물로 생을 보내지 말자고 다짐의 몽돌들 심연에 던져놓던 흰 밤도
부질없어라 만 갈래로 흩어지는 포말들
잠귀에 고이는 파도소리에 뒤척이다 깨어보면 금 간 유리창 아래까지 밀려와 어깨 들썩이던 바다
날마다 날마다 자꾸 밀려오는 슬픔의 만조여
사는 일이 때론 하염없이 울먹이는 파문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울면서 파도소릴 들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김경윤, 그 여름 사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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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지더니 먹먹한 귀울음이 생겼다. 상태가 점점 심해져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오른쪽 귀 가득 물이 찬 느낌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하니 과로와 피로 누적,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 것이 병원에서 진료한 객관적인 몸의 상태라면 이 시가 진료한 것은 나의 마음의 상태였다. <사는 일이 때론 하염없이 울먹이는 파문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울면서 파도소릴 들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의 귀울음은 아마도 나의 울먹임이지 않았을까. 왈칵 눈물이 날 듯 슬픔이 몰려오지만 파도소리를 피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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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낯선 도시의 공기와 풍경과 여인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보들레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네르발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도시에, 아르튀르 랭보를 끝내 아비시니아 사막으로 떠나게 했던 도시에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겨우 당도한 것이었소
눈에 보이는 파리는 낭만이었소
그러나 낭만적 낭만은 외려 적이었소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만 나의 낭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소
나 스스로 낭만이 되는 것이 훨씬 빠른 이 도시에서 아무 희망도 꿈꾸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시적이었소
이 땅에 살기 위해 시를 써야 했지만 헛된 희망을 불러주는 시를 따라 적고 싶지는 않았소
박정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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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는 내내 낭만 가득한 파리의 센 강과 샹들리제 거리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파리는 그 도시가 주는 이상한 낭만이 있다. 다른 도시보다 유독 파리가 그렇다. <시를 쓰기 위해 당도한 파리에서 나는 고아였던 거요> 파리를 견디며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의 고뇌가 흠뻑 느껴지는 시구였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낭만이라 일컫는 '시'이지만 그런 '시'를 쓴다는 건 시인에게 있어 고통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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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여본 적이 없다
마음이 예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영영 예쁘게 있을 수는 없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계속 무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은 도대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유혜빈, 미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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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여본 적이 없다> 첫 구절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한 가지 마음에 집중하면 그 것이 나의 감정의 전부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미주의 노래’는 그렇게 고여버린 마음이 내 마음에 웅덩이로 자리 잡은 것 같지만 결국 마음은 흘러가는 것임을 이야기한다.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나의 마음마저 바다로 흘러가는 수많은 강의 한 갈래일 뿐임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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