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혼자보다 둘일 때 더 즐겁다. 그 시절 함께 걸으며 맡던 공기의 냄새,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던 햇빛의 세기, 별이 쏟아질 것 같이 가득 찬 밤하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현재의 고민을 뒤로한 채 끊임없이 조잘조잘 함께 공유했던 그 공간에서 벌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어가며 그때의 우리는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스쳐 지나가듯 보낸 오늘도 10년 후의 내가 추억했을 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일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고민의 방향을 잡기에 훨씬 수월해졌다. 나는 제주에 더 머무르기로 했다. 글을 쓰며 살기 더 좋은 환경이고, 돈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수많은 과거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지금의 나는 지금 여기 머무르라 답을 해주었다. 그동안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더 크게 듣게 해서 나에게 미안해졌다.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두며 사는 것보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의외로 단순하고 별거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며 산 것은 아닌지 내일 바다에게 물어봐야겠다. 언제나 나를 나를 품어주는 광활한 제주의 바다. 위로의 공간. 내가 좋아하는 깊은 남색에 거친 파도소리를 가진 서귀포 바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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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스물한 살, 호주의 서쪽 도시 퍼스 시티에서부터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면 있는 Caple이라는 지역의 농장에서 브로콜리와 브로 콜리니를 따던 추억이 가끔 생각난다. 농장 근처에 마련해준 숙소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스름한 새벽녘에 차를 타고 반쯤 연 창문 사이로 맡았던 그 새벽의 공기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겉에 입은 우비 속에서 축축이 젖어있던 작업복과 두꺼운 고무장화, 그때의 우리만 아는 그 풀냄새와 땀냄새들. 함께한 나의 시절 인연들. 나에겐 처음인 것이 너무 많았던 그 시절. 그때도 숨기는 게 익숙했던 내 마음. 이 떠오른다. 낮이면 햇볕 쨍쨍한 파란 하늘이 있었고 밤이면 금방 나에게로 떨어질 듯 가깝게 있던 별들이 가득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1년을 보냈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 때 한국을 떠났고 큰 용기를 내어 간 호주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으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으니 겁낼 것 없다는 교훈을 얻었고 힘들어도 버티는 법을 배웠다. 반짝반짝 빛나길 바랬던 나의 20대는 호주를 가기 위해 준비했던 20살부터 넘실대는 파도에 끊임없이 휘청거리는 작은 돛단배 같았고 나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멀미가 밀려와 구역질을 하며 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완결을 맺었다

 

2. 

 제주에 온 지 1년이 넘은 지금, 그때와 같이 나는 도망치듯 제주로 왔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글을 쓰고 싶고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 이제는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을 정리해야 하는 것일지, 어떻게 계획을 잡아나가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나의 직관을 따를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달마다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생리통처럼 매번 변명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게 살기 위해 진통을 버텨야 한다. 오늘 드라마 ‘비밀의 숲 2’가 끝났다. 시즌 2의 캐치 프레이즈는 ‘침묵하는 자 모두 공범이다’였다. 비겁하게 침묵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느리고 괴로워도 정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잠시 살다 가는 세상이라도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Posted by soso_Lee :

 추석 연휴를 맞아 추석 특선영화를 해주는 채널이 많아서 티브이를 보다가 문득 영화관에서 튀겨주는 고소한 팝콘이 먹고 싶어 졌다. 내가 먹어 본 팝콘 중 가장 맛있었던 20대 초반에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먹었던 갓 튀겨져 나온 팝콘 생각이 났다. 그때 내가 일할 매장이 오픈 준비 중이라 다른 지역 매장에서 교육을 받는 도중에 3주도 안되어 추석이 찾아왔다. 추석 당일 나는 매표 파트를 맡았는데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이미 표가 매진이어서 매표 파트를 찾는 고객들한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목이 쉬도록 내뱉었다. 표가 없다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 액받이 무녀가 된 기분이었지만 너무 바빠서 기분 나쁠 시간도 없었다. 매진으로 매표창구가 한가해지자 매니저는 나를 매점 파트로 보냈다.  포스에서 주문 받은 메뉴를 챙겨주는 서브 역할을 했는데 매점에 비해 매표 파트는 양반이었다. 나는 미끌 거리는 구두를 시고 매점 안을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듯이 날아다니며 일을 했다. 가장 주문이 많은 것은 달콤한 팝콘이었다. 다른 팝콘과는 다르게 달콤한 팝콘은 설탕을 넣어 튀기는 것이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타버리기 때문에 꺼내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얼음을 채운 음료컵에 음료를 담고 츄러스를 구우면서도 달콤한 팝콘이 튀겨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매점 안의 직원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점점 밀려나는 고객들의 원성을 듣기 전에 달콤한 팝콘을 주어야 한다는 직원들의 간절한 눈빛이 서로 엉켰다. 점점 인상을 찌푸리는 고객들을 보며 나도 발을 동동 거리며 달콤한 팝콘을 퍼 날랐다. 그 때 다른 매장 직원이라고 우리에게 텃세를 부리던 직원들과도 그 날따라 손발이 척척 맞아서 나름의 희열도 있었다. 가장 바쁜 날이었지만 실수 없이 음료도 잘 뽑히고 결제도 막힘없었고 팝콘도 타지 않았다. 그런 날 함께 일을 하면 괜히 전우애가 생기곤 한다.

 

 20대부터 줄곧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소위 말하는 빨간 날의 개념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딱히 주말이 주는 특별함도 없었고 명절은 큰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살았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에 속박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직장도, 가족도, 친구도, 연애도, 결혼도 나를 속박하는 것이라 여기고 살아왔다. 가끔 마음이 약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원리 원칙을 지키다 한번 융통성이라는 말을 핑계로 실수 같은 것을 저지르면 그 과오로 만들어진 구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스스로 면제부를 주며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미래 라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유지할지, 변화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가볍게 팝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결국 또 이 고민에 빠진다. 미래에 보장 된 것은 없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야 하는 타이밍임을 인지하면서도 나는 안될 거라 스스로를 짓누르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나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고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꺼낼 타이밍을 놓친 달콤한 팝콘은 쓰레기통 밖에 갈 곳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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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글뽀글 오늘 충돌적으로 거의 한 달을 고민하며 마음을 접었던 복슬복슬 히피펌을 하러 갔다. 나의 평범한 인생의 나름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처음 해보는 스타일이라고 원하는 스타일의 사진을 디자이너에게 보여 주었다. 디자이너는 생머리에서 뽀글뽀글 머리를 하니 주변 사람들이 엄청 놀랄 것 같다며 변신 욕구와 걱정을 함께 돋워 주었다. 같이 머리가 잘 나올지 걱정하며 작은 파마롤들을 마는 동안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을 읽었다. 감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멈칫 했다. 늘상 외부적인 환경이나 타인에게 나의 기분과 감정을 투사시킨 것은 아닐까. 주기적인 단발병과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하는 마음과 꾸밈비라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기 반응하는 모순적인 감정이 날 힘들게 했다. 몇 년간  네일숍과 헤어숍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화장에 옷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았다. 요즘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면서 네일숍과 미용실을 일절 가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지만 내가 나를 너무 강박 속에 집어 넣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생각 없이 살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나는 나를 속박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신념도 중요하고 잘못된 건 고쳐나가는 실행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고 그런 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나라는 것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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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일하는 제주도 토박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제주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공연 연습을 했던 비하인드를 들려주었다. 자연스럽게 제주의 전통과 요즘의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순간 작은 의문이 들었다. 제주다움이란 뭘까?

 

 내가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제주도로 여행을 왔을 때 들른 숙소와 음식점, 그리고 체험을 하는 곳까지 모두 의도치 않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하는 곳이었다. 예쁘고 감각적인 느낌이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원래 제주도민들이 하는 곳보다는 그런 곳을 더 많이 찾게 된 듯했다.제주는 동네책방이 많아서 제주도에 살게 된 후로 카페보다 책방을 자주 가곤 하는데 요즘 인스타에 팔로잉되어 있는 책방 주인 분들이 도서 정가제에 대한 올린 글들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대부분 얼마나 책방을 운영하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강조하며 덧붙여 방문하면 책을 꼭 사달라고 당부하는 글까지 하는 분도 있어서 더 갸웃거리게 됐다. 다른 지역보다 노키즈존이 당연시되는 제주의 카페와 음식점들을 볼 때 느꼈던 감정이랑 비슷했다. 내가 왜 책방에 가면서 질에 비해 더 많은 값을 주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까지 사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야 할까? 나는 좀 이해가 안됐다. 소비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입장문들을 보며 심지어 방문하면 몇 권씩 책을 구매하곤 했던 나의 구매욕구는 바닥을 쳤다. 가끔 지인들이 제주도에 방문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갔는데 정해진 휴무날이 아님에도 문을 닫으면서 인스타 공지를 당일에 띄우고 문을 닫는 곳이 셋 중 하나 꼴이었다. 어쩔 때는 훈계하듯 어쩔 때는 제멋대로 합리화로 가득한 그들의 글을 보며 그들이 인스타 감성으로 말하는 제주다움은 뭘지 궁금해졌다. 제주도의 얼을 담은 진짜 제주다움일까? 본인들의 욕구일까?

 

 제주도에 내려와 정착한 내가 만난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상처 받고 지쳐서 온 분들이 많아서 대화를 나눌 때도 인간에 대한 회의와 냉소적임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토박이들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쏠쏠하게 듣곤 했다. 내가 일하는 곳도 대부분 제주토박이들이어서 어느 정도 공감했으나 그것은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을 가면 어디든 일어날 수 있는 단계 중 하나에 불과한 일이다. 심지어 물가도 비싼 제주도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많이 없어서 최저시급 수준으로 돈을 받는 곳이 허다했고 오히려 토박이 도민들이 제주라는 삶의 터전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가 많지 않은 섬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새로운 삶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건 좋은 현상이다. 그래야 그 지역의 경제가 발전하고 순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제주도를 사랑한다면 정말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쯤에서 한 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괜한 생각들이 맴도는 씁쓸한 날이었다.

Posted by soso_Lee :

 20209 30일 저녁 8 30, 재방송도VOD 서비스도 하지 않는 오로지 본방송으로만 KBS2TV에서 볼 수 있다는 추석특집 나훈아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에 부모님과 시골 외삼촌댁에 꼭 보시라 연락을 드리고 나도 시간에 맞추어 TV 앞에 앉았다. 워낙 콘서트가 예매하기 힘들기로 소문이 나서 후기로만 들은 열정적인 무대들이 궁금한 마음에 본방사수를 결심했다. 2시간 30분동안 공연을 하면서 74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의 목소리는 젊고 단단했다.

 오프닝 무대부터 총 3부에 걸쳐 이어지는 모든 무대가 하나하나 공들인 티가 났다. 중간 중간에 토크타임을 통해 그의 삶의 철학도 알 수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사람들이 본인을 신비주의 가수라고 하는데 본인은 꿈을 파는 사람이라 지칭하며 어느 순간 꿈이 가슴에 고갈이 된 것 같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잠적했다고 하고, 은둔했다고 하고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거의 모든 곡을 직접 만드는 분이니 신곡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 최대 1년이 걸리는데 그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잠적을 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가수의 모습이 참 씁쓸해 보였다. 그리고 삶에 끌려 다니지 말고 안 가본데도 한번 가보고 안 하던 짓을 해봐야 세월이 늦게 간다며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데리고 갈 것이라 말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급히 세월이 가지 않게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도전해보고 살며 세월에 끌려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뭔가 나의 청춘을 응원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파격적인 신곡 테스형!은 인터넷을 뒤집어 놓았다. 그 ‘테스형’이 소크라테스일 줄 누가 알았겠나.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형을 언급하는 가사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철학적이기도 했다. 그의 노래 가사들은 전부 그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 반복되는 단어 위주의 요즘 노래들을 듣다가 스토리와 철학이 담긴 음악을 들으니 음악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를 둘러싼 많은 소문이 있지만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를 보니 그것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무대 위의 진정한 스타였고 2시간 30분동안 끊임없이 공연을 이어가면서 지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진정한 가수였다.

 무대마다 사물놀이와 한복 같은 한국적인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코로나로 지쳐있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힘을 주고 싶어 기획했다는 콘서트의 의미가 더 와 닿았다.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일 뿐이지만 이 방송을 통해서 코로나로 지치고 어려운 사회 속에서 조금 더 힘을 내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내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도 그와 같이 젊은이들에게 응원과 의지를 선물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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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앞두고 집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니 엄마가 명절 음식들을 보냈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 까지 기억해서 게장은 큰고모가 잘한다며 큰고모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아빠랑 벌초 하러 가서 만난 큰고모에게서 엄마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두통이나 받아왔다. 간장게장은 한 마리씩 나눠서 다시 포장하고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며 택배를 부치러 못 간다고 하더니 동태전과 호박전까지 부쳐 함께 보냈다. 이틀 만에 도착한 택배는 두 박스였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동태전, 호박전, 알밤, 묵은지, 열무김치, LA갈비까지 우리 집 작은 냉장고가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정리하기도 벅찬 양을 혼자 들고 나르며 우체국에서 40분이나 기다렸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자식이 없는 나는 헤아리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 20살이 되면서부터 큰집 제사에 가는 것을 거부했고 부모님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명절마다 친척들을 만나고 오면 굳이 그들이 나의 안부를 묻는다는 말을 전하는 엄마의 말에도 시큰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친척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삶이 급격한 하향곡선으로 내려갈 때 모진 말들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고 그들이 부모님을 무시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형제가 없는 나는 가족에 대한 범위가 아주 좁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 강아지들까지가 나의 가족이었다. 형제가 아주 많은 부모님이 본인들의 가족들이 경계 없이 나의 삶을 침범하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허용하는 할 때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20살부터는 부모님에게 강하게 거부하는 의사표현을 했고 엄청난 진통이 있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타인보다 더 데면데면한 사이로 친척과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감정의 파동이 생긴다. 명절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랑 산적꼬치를 가득 담아 보내주던 큰엄마,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머니, 내가 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니 따로 담아서 챙겨 보내주는 큰고모,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제주도에 보내주라고 엄마 집에 들러서 만들어 주고 가는 이모들, 지리산에서 캔 자연산 송이를 보내준 외삼촌, 고로쇠물 나올 때 박스 채로 보내주던 막내 외삼촌.고깝게 벽을 치던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진다.  

 

 도망치듯 혼자 제주로 내려오니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내 삶이 벅차다는 이유로 쳐냈던 수많은 손길들이 매일 밤 떠오른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갇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눈물도 많아졌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쓰고 단단해지는 나를 상상한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더 늦기 전에 적어 내려가야겠다.아프지만 꺼내야 하는 나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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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본인이 선하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뭔가 해주기를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게 해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좋아!”라고 말한다. 선물을 많이 받는 것이 인복이 많은 건가? 나는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관계를 증명하는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또 다른 타인에게 그런 모습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이 점점 피곤해졌다. 대화는 점점 일방적이 되어가고 그들은 계속해서 더 전투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예쁨 받는지, 사랑 받는지 구구절절 나를 이해시키려 들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들어주다가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 반응해 줄 말을 찾지 못한 채 감흥이 식어 보이는 나를 보며 그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나에게 당신이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만날 때마다 설명하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더 사랑하지도 덜 사랑하지도 않을 텐데 일방적인 이야기를 매번 퍼부으면서도 그들은 밑 빠진 독처럼 만족을 모른다. 그렇게 충족되지 못한 마음에 불만을 생긴 그들은 점점 나를 할퀴기 시작한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쟤는 나에게 이만큼 밖에 안 해줬어라는 비뚤어진 마음을 장착한 채 갖가지 꼬투리를 잡아 교묘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폭주기관차처럼 혼자 폭주한 그들은 그럼에도 한결같이 본인은 선, 다른 사람은 악으로 규정한다. 나를 끊어내주면 좋으련만 그들은 호락호락하게 날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오늘도 모든 신들에게 기도한다. 그들에게 착각이 아닌 진짜 선함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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