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

[창작과 비평 가을호 ’]

 

*시: 명사 문학.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시를 읽는다는 건 시인의 인생과 감흥과 사상을 언어로 느끼는 것이다. 가끔 한 장도 다 채워지지 않은 짧은 시를 읽으면서도 나의 인생을 감시당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음악이 없어도 언어의 운율에 실려 단조로 그려진 시를 좋아한다. 짙은 감정이 넘실대는 시를 읽으면 하루종일 마음속이 요란스럽게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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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달방에 세 든 나는 창문 너머 캄캄한 바다만 바라볼 뿐

저 건너편 뿌연 등댓불이 건네는 위로의 꽃 한 송이도 차마 받지 못하고

 

그저 꽃 같은 불빛 끌어안고 밤새 뒤척이다

입안 가득 머금은 침묵의 말들 모래톱에 뱉어 놓았다

 

더는 눈물로 생을 보내지 말자고 다짐의 몽돌들 심연에 던져놓던 흰 밤도

부질없어라 만 갈래로 흩어지는 포말들

 

잠귀에 고이는 파도소리에 뒤척이다 깨어보면 금 간 유리창 아래까지 밀려와 어깨 들썩이던 바다

날마다 날마다 자꾸 밀려오는 슬픔의 만조여

 

사는 일이 때론 하염없이 울먹이는 파문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울면서 파도소릴 들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김경윤, 그 여름 사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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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지더니 먹먹한 귀울음이 생겼다. 상태가 점점 심해져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오른쪽 귀 가득 물이 찬 느낌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하니 과로와 피로 누적,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 것이 병원에서 진료한 객관적인 몸의 상태라면 이 시가 진료한 것은 나의 마음의 상태였다. <사는 일이 때론 하염없이 울먹이는 파문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울면서 파도소릴 들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의 귀울음은 아마도 나의 울먹임이지 않았을까. 왈칵 눈물이 날 듯 슬픔이 몰려오지만 파도소리를 피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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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낯선 도시의 공기와 풍경과 여인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보들레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네르발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도시에, 아르튀르 랭보를 끝내 아비시니아 사막으로 떠나게 했던 도시에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겨우 당도한 것이었소

눈에 보이는 파리는 낭만이었소

그러나 낭만적 낭만은 외려 적이었소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만 나의 낭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소

나 스스로 낭만이 되는 것이 훨씬 빠른 이 도시에서 아무 희망도 꿈꾸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시적이었소

이 땅에 살기 위해 시를 써야 했지만 헛된 희망을 불러주는 시를 따라 적고 싶지는 않았소

 

박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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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읽는 내내 낭만 가득한 파리의 센 강과 샹들리제 거리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파리는 그 도시가 주는 이상한 낭만이 있다. 다른 도시보다 유독 파리가 그렇다. <시를 쓰기 위해 당도한 파리에서 나는 고아였던 거요> 파리를 견디며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의 고뇌가 흠뻑 느껴지는 시구였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낭만이라 일컫는 '시'이지만 그런 '시'를 쓴다는 건 시인에게 있어 고통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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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여본 적이 없다

 

마음이 예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영영 예쁘게 있을 수는 없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계속 무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은 도대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유혜빈, 미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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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여본 적이 없다> 첫 구절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한 가지 마음에 집중하면 그 것이 나의 감정의 전부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미주의 노래는 그렇게 고여버린 마음이 내 마음에 웅덩이로 자리 잡은 것 같지만 결국 마음은 흘러가는 것임을 이야기한다.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나의 마음마저 바다로 흘러가는 수많은 강의 한 갈래일 뿐임을 새삼 깨달았다.

 

 

Posted by soso_Lee :

[창작과 비평 가을호, 책머리에] 

 

 2020.4.15일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는 21대 총선이 치러졌다.나는 마스크를 쓰고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지정된 주민센터로 향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궂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주민센터 주차장까지 줄을 서 있었다. 늘어진 행렬을 보며 울컥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총선 당일, 경합인 곳이 많아서 새벽까지 투표방송을 보다가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결과를 확인했다. 비례까지 합한 미래 통합당 103석. 그것만 보였다. 총선 다음 날부터 더불어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한 일로 온갖 미디어가 들썩였다. 책머리에 나오는 소선거구제의 문제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바꾸어 나가야 하는 선거제도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선거제도에서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역동하는 시기에  심판의 의미로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통합당은 103석을 가져갔다. 나는 그들이 우리가 청산하길 바라며 나갔던 진짜 적폐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과반의석을 넘은 여당과 정부보다 그들의 소리가 심심찮게 미디어를 뚫고 나온다. ‘촛불 권력’이라는촛불권력’ 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지금 우리가 겨냥해야 할 것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 인가.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굳건한 친일, 독재, 기득권의 세력인가. 권력에 대한 견제는 중요하다. 허나 적폐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점에 우리가 어디에 더 무게감을 두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8.15이후 코로나의 확산세가 전국에 퍼져 추석이 다가오는 가을이 왔음에도 풍성한 한가위라는 보내라는 인사보다 모두 무사히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다는 안부 인사를 전한다. 올 가을 무사히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읽으며 보내려 한다. 가장 기대되는 글은 리베카 솔닛의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이다. 코로나의 확산세가 심상찮을 때도 우리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 고집을 부렸다. 결국 지금은 마지못해 쓰고 다니시지만 어머니와 마스크로 끊임없이 실랑이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하면 되는데 왜 고집을 부릴까. 뭔가 알 것 같은데 정리되지 않는 그 현상의 이유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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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동물원> 1998.12.19 개봉. 이정향 감독

 

 나의 우주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다. 깜빡, 깜빡, 오늘도 마치 날 발견한 것 같이 깜빡이던 별은 결국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밝아오는 햇살 속에 모습을 감춘다. 속상한 건 내가 가장 못난 밤에 별이 유독 선명하게 빛난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빛나는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별이 이런 나를 모르는 것에 안도한다. 바보같이. 

 

 

 <미술관 옆 동물원>의 주인공 춘희는 가끔 마주쳐 인사 정도만 겨우 나눈 인공을 짝사랑하고 있다. 이 날도 인공을 만난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서 꾸미고 나간 후 돌아와 철수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 사람, 나를 보지도 못했어. 우린 너무 멀리 있었어. 그렇다고 내가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어. 네 말이 맞을까 봐.. 내가 다가갔는데 그 사람이 날 몰라볼까 봐 그게 겁났어..”

 

그 사람이 날 몰라볼까 봐 겁나는 건 사랑일까? 동경일까? 난 항상 그랬다. 내 손을 잡을 수 없을 만큼만 손을 뻗고 닿지 않았다고 아파했다가 한편으로는 그가 내 손을 잡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마음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당혹스러워하니까 배려한다는 그럴싸한 변명을 하며 도망가는 것에 익숙했다. 

 

 “넌 남을 배려해서가 아냐, 단지 자신이 상처 받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일부러 안타까운 짝사랑을 하는 척 즐기고 있어. 액자 속의 그림을 보듯, 창밖의 풍경을 보듯. 넌 비겁해. 평생 사랑을 못해 볼 거야. "

 

철수가 춘희를 향해 던지는 대사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넌 여태 너무 비겁한 사랑을 했다고, 너만 생각하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 감정을 액자 속에 가두어 버린다고 말이다. 용기를 내볼까 고민했던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 밤 속에서 깨달은 건 별은 관측하며 사랑하는 존재이지 온기를 나누며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춘희야. 예쁜 양말. 새 구두, 새 옷, 이런 것들보다 더 돋보이는 건 바로 너야. 넌 지금도 부시시한 머리에 맨발로 이걸 보고 있겠지? 세수는 했니? 낯선 남자에게 쉽게 방을 빼앗기고, 물은 병째로 마시며, 밥상 앞에서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너. 이 춘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꼭 있을 거야. 힘내.”

 

철수가 춘희에게 남긴 비디오 속 편지다. 영화 속 춘희에겐 철수라는 스며드는 사랑의 존재가 나타났지만 나에겐 아직 그런 사랑이 나타나지 않았다. 

 

난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 어렵다. 나는 나를 무너지게 할 모든 것들에서 날 지켜야 했고, 사랑도 그중 하나였다. 흔들리고 약해지는 내가 싫어서 치던 방패막들이 이제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별을 만드는 비겁한 행동은 그만 해야겠다. 비겁한 건 멋이 없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1998년, 내가 아홉 살 때 개봉한 오래된 영화지만 마치 친구가 옆에서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듯한 감성과 언어를 가진 영화였다. 춘희의 모습에서 내가 겹쳐 보여서 아프고 슬펐지만 따뜻하고 포근했다. 역시 좋은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좋은 영화다. 

Posted by soso_Lee :

 며칠 전부터 오른쪽 귀 안에 물이 찬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심해졌다.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 오른쪽 귀에 물을 머금고 있는 듯한 먹먹함이 들었다. 잠을 설칠 만큼 상태가 안 좋아져서 오늘 근처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냥 귓속만 봤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청력검사와 CT촬영을 추가로 진행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내 눈으로 봐도 깨끗하고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아픈 걸까? 나의 양쪽 달팽이관 상태와 귓속 염증 유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모든 검사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픈 이유가 과로, 피로 누적,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4개월째 휴직 중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과로라니 아찔해졌다.

 

 얼마 전 슬리퍼를 신고 집 앞 마트에 다녀오다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이 깨지고 멍이 들었다. 그래도 요가 갈 시간이 되어서 연고를 대충 바르고 요가원에 갔다. 무릎이 아팠다. 요가를 하다 보면 무릎을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참았다. 집에 와서 보니 멍이 오백 원짜리 보다 조금 커졌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며 다음날 또 요가원에 다녀왔다. 멍이 주먹만큼 커졌다. 왠지 이런 것들이 피로 누적에 한몫한 것 같아서 오늘은 요가원에 가지 않았다.

 

 요즘 피곤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냥 시간 때우듯 침대에 누워 억지로 조금이라도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잔뜩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며 하루를 시작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가슴 중앙이 뻐근해지고 깊은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의 모든 신체 에너지가 고갈되고 간신히 몸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 먹먹함이 가시지 않은 오른쪽 귀와 주먹만 한 멍을 단 오른쪽 무릎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를 파괴하는 내가 괴롭고 슬퍼졌다. 잠을 자고 싶다.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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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이 진리인 듯한 착각. 그렇게 공고해진 잣대를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것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어긋난 파편을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인공 한센과 같은 교도소 방에 수감 중인 패트릭의 삶과 성직자이지만 인생의 말로에 노름꾼이 되어 교구의 운영 예산 전액을 빼돌린 한센 아버지의 삶, 포르노 영화관으로 유명세와 부를 얻은 한센 어머니의 삶, 렉셀시오르의 새로운 입주자 대표로 선출된 세즈윅의 삶 역시 그러한 부서진 조각처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이 말은 세상의 전장 한가운데서 패기 넘치는 주인공이 외치는 말이 아니다. 과오를 저지른 한센의 아버지가 마지막 설교에서 내뱉는 말이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삶이 기이한 소임을 맡기려고 나를 택했나 싶다. 내 주위에 있던 사람이 공교롭게도 생을 하직하는 순간 나를 만나 마지막 말을 남기는 일이 한 해동안 몇 번이나 있었으니 말이다.'242p

주인공 한센은 주변 인물들이 생과 이별하는 순간마다 존엄 있는 인간의 행위를 보여준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인부의 묘지에 꽃다발을 두고 온 일로 세즈윅에게 당신이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라는 굴욕스럽고 비참한 설교를 듣고 난 후에도 죽어가는 이를 보고 본인이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를 구하러 달려간다. 한센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법을 알고 반려견과 애틋함을 나눌 줄 알며 이웃에게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경쟁에 밀어 넣고 공생을 말하고, 나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짓밟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인간에 대한 환멸과 분노에 매몰되어갈 때 날카로운 조각에 베이지 않도록 마법의 주문처럼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고 되새김해 본다. 타인의 인생을 평가할 권리는 그 누구도 없다. 당신이 내 인생을 평가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낯선 지명과 인물 이름 때문에 조금 더디게 읽어 내려갔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대형 영화 포스터가 걸린 프랑스 르 스파르고 앞이었다가 어느 날은 캐나다 샛퍼드 마인스의 작은 감리교회 교단이었고 어느 날은 한센이 막무가내 패트릭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교도소 안이었다. 어둡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여행하듯 읽을 수 있게 글을 쓴다는 것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멋진 소설이다.

Posted by soso_Lee :

 요가 동작 중 할라아사나(Halasana)라는 전굴 자세가 있다. 뒷구르기를 하듯이 복부 힘으로 두 다리를 머리 뒤로 넘겨 유지하는 자세이다. 이 동작은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 하는 모든 수행의 마무리 자세였다. 겁이 많아 뒷구르기도 못했던 나는 처음 요가원을 등록하고 2주 정도 이 동작이 안되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승부욕이 발동해 집에서 이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2주  반동이 아니라 복부 힘을 이용해 두발 끝이 머리 위 바닥에 닿았을 때 그 희열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가를 제대로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제대로 자세가 안될 때마다 안간힘을 쓰면서 잘하는 옆사람들을 흘깃 쳐다보며 혼자 좌절하는 나를 귀신 같이 선생님이 알아보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억지로 버티지 마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그리고 장난스레 “여러분이 요가 선생님도 아닌데 그 정도로도 충분해요.”라고 덧붙였다. 온전히 나만의 수행으로 집중하면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말들을 체득시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항상 선생님들이 꾸준히 차근차근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안되던 자세들이 갑자기 되는 날이 온다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다리를 앞뒤로 골반이 틀어지지 않게 쭉쭉 늘리는 자세는 내가 가장 못하는 자세 중 하나였다. 이 자세를 하다 너무 아파서 화가 나서 울 뻔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자세가 너무 잘되어서 골반의 찌릿찌릿 시원한 자극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요가는 끊임없이 나를 시험하고 나를 위로한다.

 

 나는 뭐든 지 잘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해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무리가 없어서 나름 욕심도 있고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거기까지였다. 심지어 그런 재능은 독이었다. 나는 잘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포기가 빨랐다. 만약 내가 도전했다 실패한다면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받아 회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잘하고 싶었으니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돌고 돌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늘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오래도록 서비스업에 일하지만 나의 오랜 꿈은 작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능이 있을 거라는 환상만 가진 허황된 꿈이었다. 흘깃 고개를 돌리니 이미 작가로서 멋지게 사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요가수행을 하듯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발이 뒤로 넘어가다 몸이 무너질까 봐 할라아사나를 하는 것이 두려워 요가 가는 것이 공포스러웠지만 매일 한 걸음씩 한 자세씩 늘려가던 그 날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100일 글쓰기 도전을 하면서 형편없는 나의 글쓰기 실력과 마주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버티며 글을 썼다. 글쓰기 기본서를 보고 글을 수정하고 글쓰기 강의를 듣고 다시 글을 수정하고 매일 울면서 글을 썼다. 그렇게 3주 동안 100일 글쓰기를 하면서 동시에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는데 2주간 2번에 신청 모두 떨어졌다. 처음엔 거절당한 것 자체로 힘들었지만 절치부심하여 꾸준히 글을 쓰고 두 번 세 번 도전하다 보니 굳은살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속도로 나의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나의 발끝이 머리 위에 닿듯이 나의 글의 형태가 잡힐 거라고 생각하며 집중했고 세 번째 도전 만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020년 9월,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2020년 9월 23일, 이제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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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가득했다. 오늘은 뭘 해먹을지 고민하다 냉장고에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어서 대충 슬리퍼를 신고 집 앞 마트에 갔다. 할인 중인 30구짜리 계란을 두 손에 들고 집으로 올라가다 계단에서 넘어져 계란도 깨지고 내 무릎도 깨졌다. 무릎이 아파서 절뚝대면서도 뭔가 해 먹어야 될 것 같아 된장찌개를 끓였다. 팔팔 끓는 찌개 속에서 다시마와 멸치를 넣은 팩을 꺼내다 뜨거운 국물에 손을 데었다. 오늘은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날인 기운이 맴돌았다. 6시쯤 작은 택배라서 우체통에 택배를 넣어두었다는 택배기사분의 문자가 왔다. 출간 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아마도 그 택배인 것 같아 바로 내려가 택배를 가져왔다. 그런데 택배의 한쪽 귀퉁이가 젖어 있었다. 안은 괜찮겠지 하고 뜯어보니 가제본의 윗부분이 흠뻑 젖어 있었다. 물인 줄 알았는데 향수 냄새 같은 것이 배어있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내려가 우체통을 열어보니 우체통 안은 물기 하나 없이 마른 상태였다. 우선 출판사에 연락을 남겨두고 서평단 신청을 계속할 예정이어서 이런 책 택배를 계속 받아야 할 텐데 다음번에도 이런 식으로 온다면 곤란할 것 같아 택배사에 글을 남길지, 문자를 보낸 기사분에게 직접 연락을 남길지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하다 택배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의글을 작성하는데 괜히 안 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항의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음부터는 조심해달라고 부탁하는 문의글을 남기면서도 보복당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배달 같은 것이 잘못 와도 쉽게 항의하지 못했다. 우리 집 주소와 나의 연락처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살게 된 후로는 경계가 더 심해졌다. 노파심일까 아니면 여성을 상대로 한 일련의 범죄들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탓일까.

 

 나는 20대 초반에 강남역 11번 출구 쪽에 위치한 아이엘츠 학원을 6개월 정도 매일 다닌 적이 있다. 20대 중반 외항사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신분당선 쪽 학원을 다녔고, 그 후 직장을 생활을 하면서도 신논현역 교보문고를 가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과 신논현 사이 노래방 화장실에서 피의자 김성민이 1시간 동안 6명의 남성을 지나치고 처음 들어온 20대 여성을 살해 한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 회사 관련 직원 분들이 제주도에 내려와 같이 식사를 했다. 제주시 오일장 근처의 식당이었다. 비가 와서 집 앞에서 택시를 탔다. 차가 조금 막히면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가끔 애월이나 한림 같은 제주도 서쪽을 갈 때 버스를 타러 가던 곳이었다. 2020년 8월 30일,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주차장 주변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20대 피의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제주시 도두동에서 자택이 있는 제주시 용담동까지 걸어서 퇴근하던 여성을 살해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진술한 피의자는 현금 1만 원과 신용카드 등을 훔쳐 달아났다고 한다.  

 

 단순히 부주의한 택배 관리에 대한 건의를 할 때도 목숨에 대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나의 회로는 지나친 망상일 걸까. 수많은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살아남았다면 이러한 두려움은 갖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 않은가. 그 날 강남역 그 화장실에 내가 갔다면, 얼마 전 제주 오일장 그 길을 내가 걸었다면, 나도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범죄와 사건들을 피하고 오늘, 살아남은 것이다. 우연히 살아남은 오늘,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번민에 사로잡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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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2018, 다큐멘터리

 

 2014 4 16일 오후 5 35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 지금요? “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2014 4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사라진 7시간이라 부르던 대통령의 부재 시간과 11차례 서면 보고를 했다는 내용이 조작이었다는 사실을 최근 검찰이 밝혔다. 청와대가 처음 박근혜에게 골든 타임 전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던 시간보다 늦은 10 22분이며 박근혜가 비서실로부터 받은 보고는 오후 및 저녁 각 1회씩 이메일로 일괄보고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2016 1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의 참석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자 미래 통합당 원내대표였으며 현재 국민의 힘 소속 정유섭은 세월호를 언급하며 대통령은 노셔도 돼요 7시간. 현장 책임자만 잘 임명해주시면 대통령은 노셔도 됩니다”라고 경악스러운 발언 했다. 이 사람은 그 발언을 한 1 8개월 전이자 세월호 1주기인 2015년에 4 16, 세월호 사건에 대한 유일한 내부자 고발이라는 조선일보사가 창간한 월간조선과 주간조선이 통합된 조선 뉴스프레스 출판사의 서평으로 핵심을 찌르는 척하지만 핵심은 다 피해서 신랄한 척하는 세월호는 왜?’라는 책을 냈던 사람이었다. 지금 판매처는 없다.

 

 부재의 기억의 초반에는 참사 당시 8 50분에 아이들이 직접 찍은 영상이 나온다. 기울어져 가는 선채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 후반부에 드디어 건져낸 세월호로 향하는 유가족들을 막으며 기다리라는 말을 하는 경찰들을 향해 유가족들은 기다리라고 해서 죽었다고 기다리다 죽었다며 소리친다.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켰던 세월호에 탑승했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앞에서 또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코로나 19로 신음하는 오늘의 세계는 매 순간이 국가재난의 고비이다. 처음 신천지 집단감염이 일어났을 때 지금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승격된 질병관리청이 매일 감염자 수를 브리핑을 하고 끊임없이 소통했다. 모든 재난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난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에 따라 피해 확산의 규모는 달라지고 국민들의 심리적 상태도 달라진다. 완벽한 정부는 없다. 완벽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대책을 간구하고 그것들을 시행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정부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골든 타임이 지났어도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구출해달라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각자의 일터에서 집에서,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7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 채 구명조끼 타령을 하던 대통령 박근혜를 보면서 우리는 절망했다. 한 때 유력 대선후보의 아들은 유가족을 향해 미개하다고 칭했고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은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라는 메모를 남겼다. 무능하지만 강한 권력에 맞서는 것에 무기력해져 갈 때, 아직 향냄새가 지워지지 않은 광화문 광장을 나가서 가득 메운 인파 가운데 앉아 촛불을 들고 그들과 함께 청와대로 걸어갔을 때, 오늘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2014 4 16일은 그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로 요동치는 대한민국의 큰 역사를 바꾼 날이다. 박근혜가 탄핵되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부재의 기억. 우리는 그 부재를 끊임없이 꺼내어 따져 물어야 한다. 내가 정유섭이 누군지 검색해보았던 오늘처럼.

Posted by soso_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