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저항 의식이 강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간에 독립운동을 설명해주시며 분노하는 선생님을 보면 화가 나 심장이 쿵쿵 뛰었고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현시대의 부조리함에 분노하곤 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이명박 정권이었는데 한미 FTA 협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처음으로 거리로 나선 광우병 집회로 온 나라가 난리가 들썩일 때였다. 그 수많은 국민들 중에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아서 학교에는 공문이 내려왔다. 반강제적으로 학생들을 집회에 참가 못하게 막았고 우리는 선생님에게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광화문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그러다 같은 반 친구들이 mbc 뉴스테스크와 인터뷰 것이 방송되면서 학교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열변을 토하며 당시 정권을 비판하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첫걸음이었다. 그렇게 20살이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국민장 날이 다행히 쉬는 날이어서 그를 추모하러 갈 수 있음에 감사했고 혼자 시청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간 장례식이었다. 시청역 출구로 나올 때부터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두리번거리다 미국에서 혼자 추모하기 위해 왔다는 언니와 우연히 만나 시청 앞 광장 잔디밭에 앉아 그곳에서 나누어준 노무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노란색 종이 모자를 쓰고 스크린으로 국민장 생중계를 보며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나는 대한민국 사회와 개인사에 환멸을 느껴 외국으로 떠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인생 첫 대선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근현대사를 좋아하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20대에도 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들을 정독하며 친일파와 독재정권 인사들 이름에 줄을 긋고 욕을 적어두곤 했는데 그날도 파주 출판단지에 가서 책 구경을 하고 근처 카페에 들려 근현대사 책을 읽다 화를 내며 분노하다 광화문으로 갔다. 때마침 2012 대선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광화문 유세를 한다고 해서 그를 잘 몰랐던 때라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궁금함에 광화문 광장 옆 계단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 날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많아서 괜히 혼자 움츠러들어 있는데 한 어르신이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그에게 “ 사실 전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라고 우물쭈물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문제이다. “라고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얼마나 자만한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분의 직업은 시인이라고 했다. 성함을 알려주셔서 나중에 절판 직전이었던 그분의 책을 어렵게 한 권 구해두었다. 그의 시집 속 작가 소개란에 그의 이메일 주소가 있었는데 그 만남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게 조금 후회가 된다. 좋은 분이었는데 내가 용기가 없었다. 그 날 유세가 끝나고 같은 해에 총선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서 나온 NHK 기자가 나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이 없는데 어떻게 젊은 청년이 정치에 관심이 많게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갑자기 그 날 책에서 읽었던 친일파들이 떠오르면서 속사포처럼 친일파와 독재정권의 산물이 박근혜가 국회의원을 그렇게 오래 하고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 나온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인터뷰를 했다. 끝에 괜히 머쓱해져서 일본 욕 많이 했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고맙다며 그 기자는 따로 인터뷰를 더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주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풍경이 참 멋진 날이었다.

Posted by soso_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