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었던 중국어학원 선생님이자 제주에서 처음 친해진 친구인 언니를 만났다. 모국어는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더 잘 통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함께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면서 월급이 휴업수당으로 전환되면서 다니던 학원을 개인 재정상 다니기 어려워졌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20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학원을 그만두고도 언니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고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는 언제든 공부하다 어려우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본사에서는 더 높은 중국어 자격증을 요구했고 고용은 불안을 안은 채 스스로 마음을 잡고 독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나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한 그녀를 학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출제경향 자료까지 프린트해 온 언니는 수업하듯이 나에게 속성 강의를 해주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언니가 준비하는 대학원 논문 번역 때 언제든 도와주리라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활력을 얻는다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다른 이를 도와줄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반면에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유독 힘들어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누구나 쉽지 않겠지만 매우 부자연스럽다. 어느 심리학 관련 책을 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분석한 글을 보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고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의 나를 심하게 채찍질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자존심도 강한 편이어서 내가 부탁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행동이라 인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위로처럼 사람들이 건네는 “너는 정말 성공할 것 같아”, “너는 정말 좀 다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런 말들은 순간적인 위로와 자신감을 가지게 할 순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이었다. 그들이 던진 말에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평가하지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하며 자기 비하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성과를 거두어 나를 칭찬하면 기쁘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섰다.
슬프게도 나는 늘 잘될 것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부탁하는 연습을 한다. 그런 나의 부탁을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주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것을 보고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오늘도 논문 준비와 학원 수업 준비로도 바쁜 언니가 나를 위해 함께 공부하러 나와주었을 때, 억지로 공부하느라 축 처졌던 마음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세상에 치여 유행처럼 도는 인생은 마이웨이라는 말을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더 와 닿게 깨달은 건 함께하면 혼자 걷지 못했던 몇 걸음을 더 걸어간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힘은 크다. 매일 상상으로만 글을 쓰던 내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벌써 14일째 글을 쓰고 있고 혼자 유튜브 보며 요가를 하다 다섯까지도 버티기 힘든 동작이 요가원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좀 더 깊은 동작을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없다. 때로 혼자 걷고, 때로 함께 걸으며 그저 그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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