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기억이다. 그 시절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멘토 멘티 열풍이 불었다. 사회 이곳저곳에서 자칭 타칭 성공한 이들이 시대의 멘토를 자청했는데 몇 주간의 강의와 멘토링 교육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돈을 받기도 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두 그룹 모두 참가했었던 열정적인 20대의 나는 상처만 받은 채 그 그룹들에서 나왔다.

 

 첫 번째 그룹은 멘토링 프로그램 기수마다 2-30명 정도로 꽤나 큰 규모였다. 매주 나름 체계적인 강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졌고 처음엔 별 문제가 없는 듯했다. 이 그룹의 주체자인 멘토는 자칭 성공한 젊은 사업가 겸 교육 강연가라고 설명했는데 이 교육을 해서 교육 강연가인 것이지 성공한 사람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그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자신과 이어진 인맥을 과시했는데 자신의 능력이 아닌 유명인사들과의 인맥자랑이 왜 필요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강의를 듣던 이들도 점점 그를 의심할 때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멘토라는 사람이 나에게 특별히 일대일 상담해준다고 했고 별 의심 없이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의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가 다른 강연에 가서 나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본인의 이야기로 둔갑시키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전했다. 그는 그런 걸 젊은이들에게 가르쳤다. 본인의 능력보다 자신보다 사회적 평판이 좋은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며 인맥을 맺는 법.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로 가면 학생 1, 학생 2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멘토링 해준다는 말로 꾀어내어 자신의 이야기로 둔갑하여 이야기하는 법.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지만 강연 관련된 강사들이 그런 경우가 꽤나 잦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절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장사하는 비열한 교육 장사꾼들이 즐비했다.

 

 두 번째 그룹은 자수성가한 한 회사의 대표가 연 자선 행사 같은 분위기여서 훈훈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그룹이었다. 서로 보듬어주고 응원해주는 교회 모임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토닥여주는 그들에게 쉽게 나의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소수 모임 때 어렵게 지난 나의 삶의 고백을 하며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였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대표가 했던 말이 비수 같았다. “ 나은 씨는 아직도 15살인 것 같아요. “ 하며 지난 나의 삶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는데 그 순간 흘렀던 정적, 나에게로 쏟아지던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가 아직도 여전히 생생하다. 나름 충격요법으로 나를 자극하고자 했던 멘토로서의 독설이라는 명목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왜 병원에 가게 되었고 치료받게 되었는지 거의 모든 사정을 설명한 것이 그 사람들이 처음이었는데 그 이후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때의 나는 충격요법이 아닌 공감과 지지가 필요했던 상태였다. 

 

 나는 3년째 회사를 다니며 상담심리학 공부를 병행 중이다. 공부를 하며 스스로 치유하고 재생하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기질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타인에 대한 불신도 꽤나 큰 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양가적인 감정이 대등하게 나에게 존재하여 대립하고 있으니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과 혼란이 찾아오지만 그럴 때마다 회피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상황을 직시하며 나를 추스르는 담담한 태도를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게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 고민하며 지금의 내가 형성된 이유를 찾아보려 수많은 과거를 복기하는 작업 중이다. 그래 아직 그냥 주저 앉기엔 아쉬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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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so_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