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인연을 구분해서 맺으라는 것이 남을 평가하는 행위인 것 같아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라는 말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항상 귓가에 맴돌았다. 20대 중반부터 서비스업에 종사했던 나는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쿠션 멘트와 매끄럽게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만 했고 그때 배운 것들로 인해 어디서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와 만나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이 나와 가치관이 맞는지 아닌지 대충 눈치를 채고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자연스레 그들과 멀어지려 하다가 괜한 노파심에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이라고 나에게 경고를 주었다. 직관을 판단으로 착각하는 그 순간부터 첫 단추가 잘못 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괜찮은 사람들은 동등한 관계 속에서 나를 존중해주지만 블랙컨슈머처럼 나와의 관계에서 수직적으로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친분이 쌓아지면 혹여 고객에게 컴플레인 걸릴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에게 미움받을까 억지로 그들에게 맞춰 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마음의 거리가 꽤 있는데 상대방들은 나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은 한번 노린 먹잇감을 쉽게 놓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나를 끝까지 괴롭혔다. 

 나는 내가 항상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좋은 인연을 알아보고 그러한 인연들을 옆에 두어서가 아니라 나를 희생한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관계에서 좋은 인연으로 맺고자 했던 나의 욕심에 함부로 인연을 맺은 벌로 가혹하리만큼 많은 고통을 받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른 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진실된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많은 날을 고뇌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어 하지 않는 약한 마음과 다양한 나의 모습보다 어느 정도 이미지의 나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결국 그렇게 나도 진실된 나를 잃게 되었다. 함부로 인연 맺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 보면  다른 사람이 인연인지 아닌지 평가를 내리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건강한 관계로 인연을 맺으며 나를 지키고 소중한 인연들을 지키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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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so_Lee :